피에르 세퍼의 후예들은 GRM 스튜디오(Groupe de Recherches Musicales) 를 중심으로 활동을 계속하면서, 테이프 음악에 관한 연구작업에 정진한다. 이들은 구체음악의 전통을 이어받아, 소음의 미학을 추구하고, 사실적인 소리를 녹음하고 변조한 뒤 이를 추상적인 작품으로 생산하면서 자신들의 음악언어를 확립해 나간다. 이들은 자신들의 새로운 예술철학 중 하나인 '청각 지상주의' 를 뒷받침하는 원리로서 '아쿠스마틱(acousmatique)' 이라는 개념을 도입한다. 이는 청각적 감지력(auditive perception)을 일컫는 고대희랍어의 '아쿠스마(acousma)' 라는 단어에서 유래한다.
이 청각적 감지력을 뜻하는 'acousma' 라는 말이 고대회랍의 어떠한 상황에서 나왔는지를 알아보면 다음과 같다.
옛 가르침이 대부분 그러했듯이, 고대 희랍의 철학자들은 자신의 철학을 가르칠 때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은 가운데 구두로 강연하였다. 이중 피타고라스를 비롯한 몇몇 철학자들은 강연시 자신과 군중 사이에 일종의 커튼을 설치하여, 자신의 모습을 커튼 뒤에 감춘 채 강연을 행하였다고 한다. 즉 제자들은 스승의 강연을 들을 때, 스승의 모습이나 표정은 전혀 보지 아니한 채, 어두움속에서 오직 스송의 목소리만 들으면서 사고하고 철학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 상황에서 스승의 가르침을 전달하는 매체는 오직 한가지, 스승의 목소리이다. 이는 오늘날 우리가 멀티미디어를 사용하여 여러 감각기관을 동시에 이용하여 사물을 받아들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교육방식이자 사유방법이다. 이러한 아쿠스마에 의한 감지방법은, 시각적인 요소를 배제함으로써,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도의 집중력을 얻도록 만들고. 또다른 한편으로는 아쿠스마에 의한 상상력의 세계를 만들어내고자 한 까닭이라고 한다. 이와 같이 사물을 받아들일 때 청각을 사용하여 집중적이고 능동적으로 청취하는 상황을 가리켜 고대희랍인들은 아쿠스마틱하다고 일컬었다고 한다.
이 '아쿠스마틱"이란 단어는, 피에르 셰퍼 이후 뮤직 콩크렛 (musique concréte) 파에 의해 중요한 음악 개념으로 대두된다. 베르나르 파르메쟈니(Bernard Parmegiani), 프랑소와 베일(Francois Bayle), 미셀 시옹(Michel Chion) 등을 위시한 GRM 스튜디오의 작곡가들은, 활발한 작품활동과 또 이를 뒷받침하는 저술활동을 통하여 아쿠스마틱이란 단어와 아쿠스마틱 음아의 미학적인 의미를 정립하여 간다. 프랑스 작곡가이자 음악학자인 미셀 시웅은 '아쿠스마틱'이란 단어를 '출처를 보지 아니한 채 듣는 소리'라고 정의한다. 거기에 대해 그의 동료 프랑소와 베일은, 출처를 보지 않은 채 무언가를 듣는다는 사실은 사물을 청취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상황을 제시한다고 봤다. 출처를 배제함으로써, 소리는 본래 위치하던 주변상황으로부터 분리되고. 독자적인 존재로 독립할 여지를 갖게 된다. 이에 따라 소리는 그 자체가 갖는
속성(예를 들어서 소리의 길이, 높이, 음색과 같은 일반적인 요소 이외에도 소리의 표정 따위가 이에 속한다)을 적당히 응용시키고 변화시킴으로써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해나가게 된다. 이것이, 소리가 일차적으로 처했던 주변 상황에서 이탈되어 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방된 소리는 자신의 독자적인 형상, 또는 표상을 구축하게 된다.
이와같이, 순수한 청각적 감지를 통하여 음향형상의 세계들 구현하고자 하는 음악이 아쿠스마틱 음악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음악으로 이루는 표상의 세계는 여러 가지 상징과 은유를 사용하여 자유로운 상상의 세계를 우리 귀 앞에 펼쳐 준다. 물론 이러한 상상의 세계에 동참할 경우에는, '듣는다' 는 행위가 궁극적으로 어떤 범위를 포괄하느냐에 따라 그 수용의 폭이 달라질 것이다.
'듣는다'는 것은, 우선 소리자체의 속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즉 음의 높고 낮음, 강약, 음색의 변화, 원근따위의 공간감등 일차적인 물리적 성질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보다 한 단계 높은 '듣는다'는 행위는, 내용을 이해하고 구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문장론적인 의미, 즉 그 소리들이 모여서 어떤 내용을 이루고 있는가 하는 점도 알아내고, 그 내용을 담고 있는 짜임새, 다시 말하면, 음악적인 구조도 들어서 이해할 수 있는, 귀로 들으면서 머리로 분석하는 단계이다. 이밖에도 첫 단계와 두 단계에서 들은 소리를 하나의 체험으로 느끼는 것도 넓은 범주에서 '듣는다'는 의미에 포함된다. 이 모든것을 포괄하는 개념이 필자가 생각하는 '능동적인 청취' 이다. 이는 모든 음악을 감상하고 작업할 때도 물론 중요하지만, 소리가 유일한 전달체인 아쿠스마틱 음악에있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라고 생각된다.
필자는, 이러한 능동적인 청취방식이 훈련에 의하여 얻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이는 물론 쉽지는 않다. 능동적인 청취를 연습하는 방법으로는, 보편적으로 학교 수업시간에 행해지는 청음과 같은 학습적 훈련이 있고, 이와 병행하여 사고 체계들 단련하는 정신적 훈련 방법도 있다.
다시 우리의 아쿠스마틱 음악으로 돌아오자.
이제 여기서 아쿠스마틱 음악이 실제로는 어떻게 연주되는가를 알아보자. 아쿠스마틱 음악을 그 기본 취지에 가장 가까운 방식으로 연주하려는 뜻에 따라 '아쿠스모니움'이 탄생한다. GRM에서 태어난 아쿠스로니움은 쉬운 말로 '스피커 오케스트라' 라고 풀이된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스피커를 음악회장에 설치한 후 그를 사용하여 테이프 음악 작품을 연주하는 것이다. 이 경우, 일반적으로 보통 음악회장에서보다 조명을 훨씬 어둡게 하게 하고, 한 두 줄기의 가는 조명으로 무대 위의 스피커를 은은하게 비춤으로써 차분한 감상분위기를 만든다. 무대, 객석 사이사이, 객석 뒷편등에 설치되는 수 십대의 스피커는 여느 테이프 음악회에서 하는 것처럼 객석 정중앙에 위치하는 중앙 믹서와 연결되고 그에 의해 조절된다. 여기서 특기할 상황은, 스피커 하나하나가 개별적으로 또는 그룹별로 사용될 수 있도록, 즉 믹서의 페이더(fader) 가 스피커를 개별적으로 조절할 수 있도록, 믹서채널과 스피커를 가능한한 일 대 일로 연결시킨다. 따라서 스피커의 개수와 비례되는 수의 페이더가 필요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스피커의 개수는 면주회의 제반 여건, 즉 연주회장의 규모 따위에 따라 약간씩 차이가 나는데. 적은 경우는 30여 개에서 많을 경우에는 백여개에 이르기도 한다. 백개가 넘는 '대편성' 일 경우에는 몇 개의 스피커를 하나의 그룹으로 처리하여 이를 하나의 페이더에 연결한다. 이러한 스피커 오케스트라는 보통 테이프음악 연주회에서의 표준적 스피커 배치, 즉 왼쪽 오른쪽 앞 귀퉁이에 스테레오로 배치하고 필요에 따라서 홀 뒤 양 쪽에도 스테레오로 배치하는 스탠더드 시스템에 비해서 훨씬 넓은 조절폭을 제공하며, 이는 곧 표현의 다양성과 직결된다.
연주할 때 한 사람이 중앙 믹서에서 수십 개의 페이더를 내렸다 올렸다함으로써 이 많은 스피커를 조절하게 되는데, 보통 이 역할은 작곡자가 맡는다. 즉 작곡가는 이 경우 연주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되며, 이 역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와 견주어 볼 수 있다. 아쿠스모니옴의 지휘자는 수십 개의 페이더를 조절함에 따라, 강약뿐만 아니라 음색과 공간감에도 영향을 미치고, 이로써 자신의 테이프 음악을 원하는 바에 따라 입체적으로 연출해 낼 수 있다,
입체적 음향 연출의 예를 몇 가지 들어 보자. 모든 스피커를 전부 사용하면서 웅장한 포르테를 만들어낼 수도 있고, 위치에 따라 몇개만을 선별하여 사용함으로써 실내악적 효과를 자아낼 수도 있다. 스피커도 쓰임에 따라서, 낮은 주파수가 잘 나는 스피커 (Sub Woofer), 고음이 잘 나는 스피커 등등 여러 종류로 나누어진다. 고음용 스피커 중 '라우드스피커트리 (Loudspeaker tree)' 라는 것이 있다. 이는 사진에서 보이는 스피커 중 무대에서 떨어져 객석 사이에 위치한 스피커인데, 말 그대로 지름 10센터미터 정도 크기의 작은 공 모양 스피커 여러 개가 하나의 배팀대에 열매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스피커이다. 보통 청중에게 가깝게 배치된다. 이를 전체 스피커와 대조적으로 사용하면 효과적인데, 예를 들자면, 무대 위의 스피커를 사용하여 중후한 곡조의 부분을 연주하다가 여리고 높은 소리의 부분에서 이 라우드 스피커 트리를 중심으로 연주를 함으로써, 갑자기 가까운 곳에서 속삭이는 소리가 나는 듯하게 장면전환율 연출해 낼 수 있다.
아쿠스모니움에서 사용되는 스피커 중 또 특이한 것은 커다란 공처럼 보이는 원형의 스피커이다. 이것은 원형 부분을 여러 각도로 움직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이는 간접음향을 위해서이다. 즉 여느 스피커와 같이 청중을 향하여 직접적으로 소리를 재생하는 것이 아니라, 벽을 향한다든지 천장을 향하도록 각도를 조절하여서, 재생된 소리가 일차적으로 흘의 벽이나 천장에 부닫힌 뒤에 들아오는 반사음향을 얻기 위하여 사용된다. 이 또한 다른 스피커와 섞어 사용함으로써 입체적인 효과를 연출할 수 있다.
아쿠스모니움에서 입체감을 표현하는 것 중 중요한 것의 하나가 공간감의 연출이다. 사방의 스피커를 순서대로 사용함으로써 소리가 사방에서 움직이는 것과 같이 만드는 것이 가장 흔한 방법이다. 한 단계 더 높은 기술로는 소리가 움직이는 대신 홀 자체의 규모가 바뀌는 것 같은, 말하자면 공간감의 인위적인 조성 등이 해당된다.
이렇듯 테이프 음악에도 연주와 해석이 필요하다. 아쿠스모니움과 같이 복잡한 구조의 스피커 오케스트라를 갖고, 청중에게 음악가가 원하는 작품 해석을 전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 아쿠스모니움을 다루는 것 또한, 한 연주가가 악기를 연습하고 지휘자가 지휘를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연습과 음악적인 경험을 거쳐야만이 연주자로서 성속이 되어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쿠스마틱 음악의 작곡가들은 음악회장에서의 해석을 염두에 두고 테이프 음악을 작곡하며. 특히 정통파 프랑스 아쿠스마틱 작곡가들은 기본적으로 두 채널, 즉 스테레오 테이프을 원칙으로 작업에 임한다. 이는 하나의 이상적 연주 형태를 지향하고 작곡되는 멀티포닉 테이프 음악과는 다른 노선을 걷는다고 필자는 생각한다(멀티포닉이란 두 채널 이상을 사용하는 테크닉으로 4 채널, 또는 8 채널 등이 흔히 사용된다. 독일의 관념적인 환경에서는 기술적인 어려움과는 상관없이 일찍부터 멀티폰 음악 작곡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최근에는 ADAT와 같은 멀티 채널 레코더의 보급으로 멀티채널 음악이 보편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스테레오포니로 작업하는 경우 재생시의 상황이 작품의 큰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 여러 가지 종류의 원근법을 소리재질에 가미한다든지, 여러 음색을 혼합함으로써 관현악적인 색채를 이미 작품의 구성요소로 내재시킴으로써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적 연출이나 입체적 표현의 가능성을 증가시킬 수 있다,
프랑스의 아쿠스마틱 음악은, 이렇듯 다른 나라의 테이프 음악과는 성격을 달리하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구축하여 왔다. 그런 점에서 볼때 GRM스튜디오의 음악과 철학은. 전자음악 분야 안에서도 보편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최근 들어, 퍼스널 컴퓨터의 사용 및 소유가 용이해지고. 이런 추세에 따라 음악 분야에서도 음악 소프트 웨어의 개발이 진전됨에 따라, 전자음악으로의 접근이 쉬워졌고, 이런 변화는 보통 음악가들에게 전자음악의 문턱을 낮추는 결파가 되었다. 예를 들어 GRM도 그들의 소프트웨어 'GRM Tools'를 외부 음악가 들에게 공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하여 소프트웨어뿐만 아니라 GRM의 음악어법도 자연히 함께 알리게 되었는데, 이와 같은 상황은 다른 스튜디오 에서도 일어나고있는 현상이다. 이러한 기술교류는 스튜디오를 외부에 알리고 어느 정도는 외부에 개방하는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교류의 증가에
따라서, 70년대와 같이 소속 스튜디오에 따라 작품 스타일이 뚜렷하게 나누어지는 면이 90년대 후반부터는 다소 없어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90년대 후반부터는 테이프 음악에 대한 명칭 또한 통일되는 경향을 보여서, 연주자 없이 스피커에만 의존하여 연주되는 테이프음악을 일컫는 일반적인 명칭으로서 아쿠스마틱 음악이란 어휘가 사용되고 있다.
아쿠스모니움 연주회 감상후기
-야쿠스마틱 즉흥 연주의 장-
자는 지난해 파리의 라디오 프랑스에서 열리는 GRM의 아쿠스모니움 정기 연주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는 '멀티폰' 이라는 이름의 음악회시리즈인데, 일 년에 대여섯 번을 개최하는 아쿠스모니움만의 음악회이다. 하루 저녁에 두 개의 옴악회가 열린 이날 프로그램은, GRM 스튜디오의 최근 변모를 보여주었다, 이날 저녁 연주된 작품들은 주로 GRM에서 위촉한 작품이 반 이상이었는데, 이중에는 약기를 함께 사용하는 라이브-일레트로닉(Live-Electronics) 작품, 멀티 채널로 만들어진 멀티포닉 테이프 작품 등이 포함되어, 시대의 추세에 따라 여러 가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한 가지 특기할 점이 있는데 이 멀티폰 음악희는 전석 무료로 가능한한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려고 의도, 노력하고 있는 듯하다
독창적인 시스템을 창안하고 그 미학을 가꾸어 온 GRM 스튜디오이지만, 최근 들어 이들의 작품경향을 보면 비판할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그 작품들의 언어가 매우 획일적이고 단일된 미학적 배경을 표방하는 터라, 작곡되고 연주되는 작품의 경향에서 세대 간의 차이, 또는 계승된 발전이 별로 없는 상태이며, 지금 활동하는 세대가 그 이전 세대의 작품 언어를 답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피에르 셔퍼의 세대가 기졌던 실험정신과 탐험가적인 용감성, 그리고 그 직후 세대가 발전시킨 고도의 예술성을 이어받아 보다 창조적이고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발전시키는 것이 그들의 과제로 남아 있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미지막으로 필자에게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에 남는 아쿠스모니움 음악희의 감상기를 피력하고자 한다. 이는 바젤에서 본 프람소와즈 베일의 음악회였다.
프랑소와 베일은 아쿠스마틱음악에 평생을 바쳐은 작곡가이다. 그는 오랜 동안 GRM 스튜디오의 책임자로 있으면서, 아쿠스모니움에 대한 연구를 이끌어 은 중요한 인물 중의 하나인데 그의 저서 <musique acousmatique: proposition… … positions> (1993)는 아쿠스모니물과 아쿠스마틱 음악 연구에 있어 길잠이가 되는 문헌이다.
그는 필자가 거주하는 스위스 바젤에서 몇 번에 걸쳐 객원연주를 하였다. 그는 매번 약 30여 개의 '소규모'로 편성된 아쿠스모니움을 가지고, 능숙한 솜씨로 아쿠스마틱 작품들을 연주하곤 하였다. 한번은 바젤 시에서 주관한 문화축제의 일환으로 베일의 아쿠스모니움 연주회가 열렸다. 이는 여느 때처림 보통 음악회장에서 열리지 않고, 시내 한복판에 가설된 대형 야외 천막 안에서 행하여졌다. 많은 사람들이 내부에 자리잡고 불편 없이 관람할 수 있도록 설치한, 큼지막한 천막이긴 하지만, 외부소음을 100퍼센트 차단황 수 없다는 점에서 블 때 미세한 환경소음 하나하나가 작품 감상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 아쿠스마틱음악회를 행하기에는 그리 좋은 혼경이라고 할 수 없었다. 이날 음악회에서는 베일을 비롯한 몇몇 작곡가들의 작품이 연주되었다. 연주회는 정시에 시작되었다. 그날은 하루 종일 축축하고 찌푸린 날씨가 주위를 감싸고 있었다. 음악회가 시작되고 청중은 텐트 안에서 아쿠스모니움의 세계에 몰입하고 있었다. 음악회가 반 정도 진행되었을까? 갑자기 바깥 텐트 위에서 두두둑 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어두움 안에서 조용하게 아름다운 음향의 전자 음악 감상을 하던 사람들의 귀에, 천막 위로 뚝뚝 떨어지는 외부의 빗방울 소리는 음악회 도중의 난폭한 폭력과 같이 들렸다. 상징과 상상의 세계를 감상하고 있던 청중은, 갑자기 밀려드는 소나기 소리를 들어야 했고, 소나기에 관한 중량, 동작, 속도 등 온갖 구체적인 정보를 억지로 접해야만 했다. 즉 '형이상학적인' 음향의 세계에 있던 청중은 타의에 의해 물리적인 현실세계로 끌려 내려 온 것이다. 필자는 주위에서 일어나는 상황에 좀더 귀를 기울이면서 무엇을 들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즉 거대한 물리적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예술 작품 감상을 계속하기 위해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를 골라 들어야 할지, 뒤죽박죽이 된 장내의 소리를 되는대로 전부 받아 들어야 할 지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는 사실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혼란속에서는 혼란의 어법을 따라가야 하듯, 그 텐트 안에 앉아 있는 이상 그곳의 소리를 모두 종합적으로 들을 수밖에 없었다. 좀더 지나니, 쉬익쉬익 하는 비바람 소리가 크레셴도 되어, 공포의 분위기까지 조성하기 시작했다. 필자는 흔란과 공포의 도가니속에서 그 상황을 계속 귀로 따리가고 있었다. 그런데 얼마 후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즉. 스피커에서 들리는 내부의 소리와, 외부에서 들리는 자연의 소리사이에 어느새 일종의 싸움이 붙은 것이다. 중앙믹서에서 테이프 음악을 연주하던 작곡가 베일이, 외부의 빗소리에 대항하여 싸우기 시작한 것이다. 빗소리와 테이프 음악과의 대결은 한참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비바람 소리는 더 이상 방해꾼이 아니라 놀랍게도 아쿠스마틱 음악의 한 부분으로 흡수되어 갔다. 이제 빗 소리, 바람 소리, 텐트 소리, 그리고 스피커에서 나오는 테이프 음악 소리가 하나로 어우러져서, 함께 합주를 하기 시작했다. 베일은 사실상 자신이 조절할 수 없는 외부 자연의 소리를 교묘히 이용하면서, 때로는 이와 함께, 때로는 이에 반대되도록 즉각적으로 반응하면서 테이프의 소리를 조절하였고, 걸과적으로는 전체 상황을 총괄하는 새로운 음향세계를 연출해 낸 것이다. 결국 음악회는 흥미 진진한 '아쿠스마틱 즉흥연주의 장' 으로서 막을 내렸다. 음악회가 끝난 뒤, 프랑소와 베일은 만족하지 못한 표점을 짓고 있었지만, 이날 면주는 내게 깊은 인싱을 남겼고 아마도 내 생애 가장 기먹에 남는 음의회 중 하나로서기억에 간직될것이다.
테이프 음악에도 연주와 해석이 필요하다. 아쿠스모니움과 같이 복잡한 구조의 스피커 오케스트라를 갖
고, 청중에게 음악가가 원하는 작품 해석을 전달하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이 아쿠스모니움을 다루는 것 또
한, 연주가가 악기를 연습하고 지휘자가 지휘를 공부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훈련이 필요하다. 기술적인 연습과 음악적인 경험을 거쳐야만이 연주자로서 성숙이 되어 원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0년 3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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