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리와 쾰른을 중심으로 하여 두 개의 주류로 분리되던 유럽의 전자음악과는 달리, 1950년대 초 미합중국의 전자음악분야에서는 여러 가지의 서로 다른 조류가 공존하였다. 이는 미국이란 곳이 넓다는 지리적인 이유도 있지만, 그 외에도, 매사에 있어 비판적이고 관념적인 자세를 고집하는 유럽과 달리, 미국 예술가들이 사상적으로 유럽보다는 개방적이고 자유로웠다는 점도 크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지난 호에서 잠시 언급한 것처럼 1952년에는 뉴욕의 현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에서 블라디미르 우사체브스키(Vladimir Ussachevsky)와 오토 루닝(Otto Luening)의 작품을 포함한 몇 개의 테이프 작품이 선을 보였다. 우사체브스키와 루닝은 대학에서 후진을 양성하는 학구적인 작곡가들이었는데, 이들은 1950년 초기부터 학생들에게 테이프의 컷팅작업방법을 가르치면서 테이프를 이용하여 작품을 만드는 방법을 가르쳐 왔다. (미국에서의 테이프 레코더의 기술 개발은 일찌기 1930년대에서부터 진행되어왔고 1950년대에 들어서는 일반 교육기관이나 개인에게까지도 보급이 될 정도로 발달하였다. 이러한 사실이 물론 음악가들에게는 매우 좋은 조건으로 작용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우사체브스키의 대표작으로는 "Sonic Contours (1952)"가 있고 루닝의 작품으로는 "Low Speed (1952)", "Invention in Twelve Tones(1952)"등이 있다. 이들의 작품을 들어보면, 전체적으로 보수적인 색채를 띈다고 평할수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 본 작품들과는 달리, 즉 당시의 보통 "전자음악" 과는 달리, 소음 등의 비화성적이고 음악외적 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반대로 보편적인 음악적 재료를 사용한다. 즉 그 어법에 있어서 선율과 화성이 사용되며, 또 악기의 통상적인 소리를 변용없이 녹음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리듬이나 박자, 맥놀이 사용도 고전적인 의미대로 사용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전통적인 어법과 함께 테이프 편집에서 사용되는 특수한 소리가 녹음된 테이프를 부분 부분을 자른다던지, 또 그것을 다른 부분과 연결하는 방법, 테이프를 반대 방향으로 재생시키는 방법 (reverse), 재생 속도에 변화를 줌으로써 음높이나 음색에도 변화를 주는 방식(transposition) 등의 기본적인 편집기술이 적당하게 동반되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사체브스키와 루닝은 1959년 록펠러 재단으로부터 재정후원을 받아 칼럼비아-프린스턴 스튜디오(Columbia-Princeton Music Lab) 를 설립한다. 이 스튜디오에서는, 이들 두 설립 작곡가 이외에도 밀튼 배빗(Milton Babbitt)과 마리오 다비도브스키(Mario Davidovsky), 찰스 우리넨(Charles Wuorinen), 제이콥 드러크맨(Jacob Druckman)등의 작곡가들이 작업하였다.
한편 1951년 뉴욕에서는 "The Project for Music for Magnetic Tape"라는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이를 조직했던 몇몇 작곡가들, 즉 존 케이지를 비롯하여 얼 브라운 (Earl Brwon), 모턴 펠드만 (Morton Feldman), 데이비드 튜더(David Tudor), 크리스티안 볼프 (Christian Wolff) 등이 배런 부부가 설립한 개인 스튜디오에서 일련의 테이프 작품들을 작업하게 된다. 엔지니어 부부 배런 (Louis Barron과 Bebe Barron)에 의하여 뉴욕에 설립된 이 스튜디오는 이미 1948년부터 자기 테이프를 사용한 뮤직 프로덕션의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었다. 이 스튜디오는 1956년에는 영화 "Forbidden Planet"의 음악을 담당함으로서 유명하게 되고 그 후 1964년에 로스앤젤스로 옮겨간다.
또한 특이했던 점은 위의 작곡가들이 종래의 전통적인 서양음악식의 작곡방법을 거부하고,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작곡기법을 모색하였었는데, 이는 서양음악사에 있어 하나의 획기적인 변화로 기록된다. 이 사조(思潮)의 선구자적 역할을 한 작곡가로는 존 케이지(1912-1992)를 꼽을 수 있는데, 그는 주역(周易)사상 - 영어로는 "I-Ging" 으로 번역- 에서 "우연성의 법칙"을 얻어내고, 이를 자신의 음악 세계에서 주된 테마로 삼았다. 이러한 사상적 배경을 갖는 그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Music of Changes (1951)" 가 있다. 또 그는 일찍부터 새로운 음향을 추구하는데 연구를 기울여, 1943년부터는 피아노 현에 플라스틱, 쇠 따위 여러 가지 이물질을 부착시키고 여기서 이색적인 음향을 얻어 내었는데 이는 prepared piano라 불린다. 이러한 발명가적인 그의 실험정신은 (그는 사실상 발명가의 아들이었다) 후에 그의 동료 데이비드 튜더와의 공동 작업을 거치면서 한층 더 발전하게 되는데, 이러한 그의 음향에 대한 관심과 연구는 그의 전자 작품에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는 1952 테이프 작품 "Imaginary Landscape No.5" 를 작곡한다. 이 작품은 마흔 두 개의 째즈 LP판에서 모은 다양한 길이의 소리들을 우연성으로 이루어진 도식아래 짜서 구성한 작품이다. 같은 해 작곡된 "윌리엄 믹스 (William Mix)" 도 위와 같은 원칙에 의하여 작업되었다. 여기에 사용된 소리들은, 재미있게도, 스튜디오에서 쓰고 남은 테이프 "찌꺼기" 들이었다. 케이지는 600여개의 테이프 잔여물을 모아다가 여섯가지의 카테고리로 분류한다. (A.도시의 소음, B.시골의 목가적인 소리, C.전자음향, D.음악소리, E.성악 또는 금관악기소리, F.마이크로 증폭을 필요로 하는 여린 소리) 이 소리들은 정확하게 계산된 작품 플랜에 따라 여덟 개의 트랙에 배치 된다. 그는 이 플랜에서 길이, 농도, 휴지부, 소리의 사용 등을 역시 주역의 우연성에 기인하여 짜고 조직한다. 케이지는 몇 개월 동안을 이 작품에 시간을 할애했고, 그의 동료 얼 브라운은 이 기간 동안 줄곧 케이지와 함께 실제적으로 작업을 같이 수행하였다.
이외에도 우연성의 법칙을 사용한 작품으로는 전자음향만을 사용하여 만들어진 크리스챤 볼프의 작품 "Magnetic Tape (1952)", 수학적인 확률에 따라 소리의 구성을 짠 얼 브라운의 작품 "Octet No.1" (1953), 테이프와 악기를 함께 사용한 모턴 펠트만의 작품 "Marginal Intersection (1953)" 등이 있다.
마지막으로 벨 연구소에서 이루어진 전자음악 활동들에 대해 살펴보자. 1930년대부터 뉴 저지의 벨 전화 연구소 (AT&T Bell Telephone Laboratories)는 전화 사용에 필요한 음성합성(speechsynthesis)에 관한 연구에 임한다. 이 연구의 중심 인물이 맥스 매튜스 (Max Mathews)이다. 그는 당시 낮에는 연구소의 기술개발을 이끄는 한편, 밤에는 개인적으로 음악을 위한 음향합성의 개발에 몰두하였다. 그 결과 이들은 1957년에 사상 최초로 컴퓨터를 이용하여 합성음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한다. 이것은 종전의 방법, 다시 말하여 녹음된 소리만을 소재로 사용하거나, generator에서 생성한 소리만을 사용하여 작업해 온 지금까지의 전자음악과는 달리 디지틀 기술에 의한 합성음을 사용하게 되었다는 점에서 커다란 의의를 갖는다. 그러한 그의 공로로 인해 매튜스는 오늘날 "컴퓨터 음악의 아버지"로 일컬어 진다. (이런 음악사적 배경 때문에, "컴퓨터 음악" 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는, 컴퓨터로 합성된 음을 사용하여 작곡된 음악이라는 데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그는 그의 동료 Newman Guttman과 함께 몇 가지의 테이프작품을 발표한다. "실버 스케일(the silver scale-1957)", "피치 바레이션 (Pitch Variation)" 등의 작품이 이에 속한다.
맥스 매튜스의 음악기술적 공헌은 매우 컸으나, 그와 그 동료들의 음악적, 또는 작곡상의 지식은 그들의 기술적인 수준에 비하여 엄청나게 뒤떨어졌다. 이는, 위에 예로 든 작품들을 감상해 보면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즉 이들의 작품은, 몇 가지 음 높이를 가진 정현파 내지는 톱니파등이 삐뿌삐빠하는 정도의, 아주 간단하고 별 창의성이 보이지 않는 수준의 단순한 멜로디의 연속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음악성의 결여에도 불구하고 이들과 이들의 음악을 결코 탓하기만 할 수도 없는 것은, 매튜스를 위시한 그들이 사실상은 음악가가 아니라 물리학자요 기술 방면의 전문가들이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 벨 연구소에서 음악적으로 가치가 있는 작품이 제작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초에 이르러서 작곡가 제임스 테니 (James Tenney, 1934-2006) 가 이 연구소에서 작업하면서 부터이다. 쥴리어드 음악학교에서 수학하고, 힐러(Lejaren Hiller) 와 바레즈 (Edgard Varese) 등에게 작곡을 사사한 젊은 작곡가 테니는 매튜스와 함께 컴퓨터를 이용한 음향합성용 프로그램과 발전시키고 또 컴퓨터를 이용하여 작품을 구상하는 프로그램 등을 고안, 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 그들이 발명한 디지털 신세시스 프로그램 "Music IV" 는 다른 작곡가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된 첫 작곡 프로그램으로써, 이후 30여년 동안 다른 작곡가들에게,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하여 널리 보급, 사용되었다. 그는, 새로운 미디어를 사용하여 음악작품을 창조하는데 있어서, 단순히 새로운 기술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그에 따른 음악적, 미학적 측면을 고려하고 발전시켰다는 점에 있어 매우 평가받고 있고, 그는 새로운 미디어와 예술적 의미를 적합하게 융화, 발전시킨 예술인으로서 오늘날까지도 중요한 작곡가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이 벨 연구소에서 일련의 테이프 작품을 만들었다. 그 중 대표작으로는 1963년의 작품 "Dialogue(대화)"를 들 수가 있다. 이는 그의 "Five Stochastic Studies" 라는 음색을 위한 일련의 습작중의 하나이다. 그는 이 작품에서 음향소재만 컴퓨터를 사용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작품의 구조 자체도 컴퓨터에 의한다. 즉, 그는 이 작품에서 음색, 길이, 음높이 등을 통계학적인 방법에 의해 결정했다. 즉 컴퓨터가 작품의 구조체계 및 음악적 내용의 파라메터를 정할 때 모두 통계적인 수치에 의해 결정하는 것으로써, 소프트웨어가 전체적인 구성과 그에 부속되는 부수적 구성부분 모두를 컨트롤하는 것이다. "대화"는 백색소음과 보통 소리, 즉 두 개의 서로 다른부류의 소리가 위의 구조상에서 어울려 엮어지는 작품이다.
테니가 1960년대 중반에 벨 연구소를 떠난 뒤, 연구소는 불란서 출신의 작곡가 리쎄 (Jean-Claude Risset, 1936-2016) 를 초빙한다. 흔히 일컫기를, 리쎄가 벨 연구소에 온 이후, 물리학과 음향학에 관한 체계가 정립되었다고 한다. 그가 벨 스튜디오에서 매튜스와 함께 컴퓨터를 이용한 음향합성 연구개발에 참여하게 된 이후에 합성음 카탈로그를 만든다. 리쎄는 음향 합성 작업에 대하여 대략 이렇게 얘기한다. "기존의 소리를 사용하지 않고 소리를 새로이 합성한다는 것은, 작곡가의 구상을 제한없이 실현할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실상 소리를 합성하려면 컴퓨터에게 아주 세세한 부분까지도 정확하게 지시를 해야한다. - - - 기본 악기를 모방하는 과정에서 소리의 아주 복잡한 속성을 많이 알아내게 되었다. ... " 1968년 리쎄는 벨 연구소에서 "Computer Suie from Little Boy" 라는 곡을 작업한다. 이는 초기의 벨 스튜디오 작품중 모든소리가 "Music V" 라는 프로그램으로 생성된 합성음으로 된 작품중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이중 "Fall(하강)"이라는 작품은 매우 긴 글리산도로 이루어진 곡인데, 계속하여 끝없이 낮은 음으로 떨어지는듯한 음향 착각 현상을 일으키는 작품이다. 이 곡은 피에르 알레라는 작가의 "Little Boy"라는 무대작품에 쓴 곡이다. 이 작품의 주제는 히로시마 원자폭탄인데, 이 곡 Fall에서 리쎄는 폭탄이 투하되면서 일어나는 상상속의 끝없는 하강을 당시에 새로이 개발된 음향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
리쎄는 그 일년 후 1969년에 "Mutation" 과 "Inharmonic"이라는 작품을 발표한다. "Inharmonic"은 제목이 시사하는 바대로 "비화성"을 테마로 한 작품이다. 그는 얼마 안되는 재질을 골라 사용하면서 이 재질의 음색을 매우 다양하게 변화 시켰는데 이러한 작품들은 합성음향으로써 음악적 표현에 성공한 초기의 작품들로 평가된다.
종래의 방법으로는 실현 불가능했던 표현들이 이렇게 합성음향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게 된것은 전자음악의 발전에 의한 커다란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기술적으로 복잡한 음악 또는 음악적 아이디어들은 테이프라는 매체에서 그 이점을 발견하고 이러한 아이디어에 적합한 음악 장르로 발전되어간다.
(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0년 5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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