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의 이해

전자음악의 이해 6 - 기술과학의 발전과 예술 아이디어의 변천

이정혜 2026. 4. 12. 01:26

지난글 전자음악의 이해 5까지는 주로 전자음악역사의 초기, 1950년대와 1960년대를 중심으로 하여, 유럽과 미국에서 행해진 테이프음악에 관하여 살펴봤다. 개척자들에 의하여 연구된 초창기의 전자음악은 다음세대로 계승되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양상을 띄고 폭넓게 발전되어 간다. 


전자음악의 발달은 여러 가지 관련분야가 복합적으로 상호 영향을 미치면서 함께 발달되면서 이루어진다. 이러한 사실은 앞서 본 테이프 음악분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모든 전자음악 분야를 총 망라하여 볼 수 있는 현상이며, 이는 기술과 음악이 서로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얻어지는 발전인 경우가 많다. 음향학과 물리, 그리고 컴퓨터에 관련된 기술이 음악과 깊은 관련을 맺고 발달함에 따라, 종전에는 실현이 불가능하던 아이디어들이 점차 가능성을 타진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예술가의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하여, 관련 기술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킴으로써 그 아이디어의 실현을 가능케 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예술가가 최신 기술개발에 의한 새로운 가능성에 영감을 받아 작품 아이디어를 얻는 경우도 있다. 


이는 음악 분야 뿐만 아니라 기술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 여러 예술 분야에서 널리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미디어 예술의 대표적인 장르가 영화예술이다. 영화가 제작되기 시작한 초창기를 살펴보자. 활동사진의 녹화가 가능해짐에 따라, 극예술은 무대라는 제한된 조건에서 벗어 날 수 있게 되었다. 루이 브뉘엘 (Luis Buñuel)과 살바도르 달리(Salvador Dalí)는 영화기술의 발명으로 인하여 얻어진 새로운 표현의 가능성, 즉 몽타쥬 및 편집기술 충분히 활용함으로써, 시간과 공간을 넘나드는 그들의 초현실주의 예술세계를 아주 적합하게 표현할 수 있었다.그들이 감독, 제작한 작품 "안달루시아의 개 (Un chien andalu, 1929)" 를 보자. 초기영화사에서도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히는 이 영화를 보면, 사람의 눈알을 칼로 긋는 장면, 한 인물이 길에 나타났다 어렴풋이 사라져가는 장면, 살갗 틈새로 벌래들이 기어나오기 시작하여 번져가는 장면, 힘쎈 장사처럼 가구와 말의 시체를 한꺼번에 맨몸으로 끌어가는 장면 등, 연극에서는 표현하기 어려운 일련의 장면들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일정한 스토리를 따라가기 보다는 일련의 상징적 이미지를 나열함으로써, 꿈과 현실 세계 사이를 오가는 초현실주의적 이미지를 영상으로 구축하였는데, 이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속성과 작가가 의도한 예술적 내용이 理想的으로 매치되어서, 기술과 예술을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하나의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미디어 예술에 있어서는, 사용된 기술이 작품의 내용과 본질적으로 융화되는 관계를 갖는지, 아니면 단순한 효과로 사용되는지의 여부가 그 작품의 가치를 평가하는 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전자음악에 있어서도, "기술 과학의 발전에 따른 예술 아이디어의 변천" 내지는 "미학의 변천에 따른 관련 기술의 발전"은 매우 중요한 테마이다. 전자음악 관련 작곡가들은 항상 관련 기술분야의 전문인력과 긴밀한 관계에 있으면서, 어떠한 것이 가능해져 가는지에 항상 주의를 기울이는 한편, 반대로 자신이 원하는 바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자와 공동으로 연구에 임하여 새로운 악기나 설비를 개발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전자음악 스튜디오를 중심으로 한 음악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꾸준히 촉진되어 왔고, 90년대에는 전자 음악 스튜디오가 주최하는 음악 소프트웨어 콘테스트도 자주 찾아 볼 수 있었다. 


여기서는 기술의 발달로 인하여 실현이 가능해진 아이디어와 몇 가지 작품을 살펴 보도록 하자.
1960년대 이후의 음향합성(sound synthesis) 기술의 발달은, 작곡가가 원하는 바에 따라 음향을 합성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에, 그에 동반되는 문제점들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작곡가들에게 새로운 활력소로 작용하였고, 또한 그로 인한 상상의 날개를 마음껏 펼치게 하였다. 또, 이에 따라 "음향창조"가 작품을 구상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요소로 부상하게 되었고 또 동시에 변수로 작용하게도 되었다. 
1979년 빠리의 IRCAM연구소(Institut de Recherche et Coordination Acoustique/Musique)는 CHANT이라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 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음원을 근거로 하여 음향을 합성하는 소프트웨어인데 주로 음성, 즉 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하고 합성하는데 사용되었다. 여기서는 인공적인 음향모델과 자연적인 음향모델을 함께 사용하여 합성음향을 만들 수가 있는데, 인공적인 음향합성만으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부분, 예컨데 감정표현이나 세밀한 뉴앙스의 차이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보다 풍부하게, 그리고 음악적으로도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었다. 


1980년 영국의 작곡가 죠나탄 하비 (Jonathan Harvey, 1939-2012)는 CHANT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작곡한 그의 작품 "Mortuos Plango, Vivos Voco" (死子를 위해 눈물을 흘리고 生子를 위해 외친다, 1980) 에서 , 합성음향과 실제 녹음된 소리의 사이를 오간다. 이 작품은 약 9분 길이의 4채널 또는 8채널용 테이프 작품이다. 당시 그의 아들은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소년 합창단 단원이었다. 그는 아들로 하여금 이 사원의 종에 새겨진 글귀를 노래로 부르게 하고 그 노래소리를 녹음한다. 뒤이어 그 종소리 자체도 녹음하고 난 뒤, 이 두 가지의 소리를 컴퓨터로 분석, 재합성(resynthesis) 한다. 결과적으로 종소리와 사람 노래소리, 그리고 그 사이를 유연히 오가는 변용음향(transformations)을 가지고 하나의 작품을 만들게 된다. 우선 그는 종소리의 배음을 분석한다. 여기서 얻은 스펙트럼을 토대로 하여 전체 작품의 구성을 짠다. 이는 여덟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각 부분이 시작 될 때 마다 그 부분의 중심음으로 만들어진 종소리가 울린다. 이 종소리는 각 부분이 전개되는 양상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변화한다. 글리산도를 통해 한 종소리에서 다른 종소리로 옮아가기도 하고, 오리지널 종소리와 합성된 종소리가 대위법적으로 엮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 그는 소년의 목소리에서 그 음성이 갖는 특성을 formant에 의해 분석한다. formant 분석이란 간단히 설명하자면 어떤 음향이 갖는 모음적 성격을 파악하는 것이다. 보통 한 음성에는 세개의 모음적 요소가 있다고 보는데 이를 f1, f2 그리고 f3로 보고 이들을 주파수로 분석한다. 이리하여 같은 "아" 라는 모음에 있어서도 한국어의 "아"와 영어의 "아"가 어떤식으로 다르다 하는 것을 수치로 계산하여 알 수 있는 분석법인데, 이것은 악기의 소리나 사람의 목소리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분석법이다. 반대로 이러한 수치는 특정한 모음적 성격을 사용하고자 할 때 재합성되어 사용될 수 있다. 여기서 소년의 목소리는 formant에 따라 분석된 뒤 재합성된다. 이렇게 재합성된 소리는 종소리의 스펙트럼에 따라 다시금 재합성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종소리에 가까운 목소리, 또 목소리에 가까운 종소리를 만드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렇게 생성된 소리는 상황에 맞게 변용되는 중간 음색으로, 또는 글리산도 같은 형태의 음악적 양상으로 나타나면서, 오리지널 음향과 합성음향 사이를 잇는 다리 역할을 하게 된다. 즉 결과적으로는, 오리지널 종소리가 소년의 목소리에 유사하게 합성된 종소리로 변한 뒤 그것이 다시 소년의 목소리로 스무스하게 연결되는 패세지, 또는 이와 반대되는 패세지를 이루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작품은 IRCAM의 위촉작품인데, 그는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하여IRCAM의 Studio에서 작업을 진행하였고, 그곳의 테크니션으로부터 기술적 보조를 받으며 긴밀한 상호협조하에서 작품을 실현했다. 
죠나탄 하비는 2년 후에 작곡된 작품 "Bhaki" 에서도 이와 비슷한 기술을 사용한다. 그는 여기서 "모든 내 작품은 실존하는 악기와 그 악기의 능력을 확대시킨 것 사이의 환상세계를 오가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라고 얘기하면서 또한 당시의 컴퓨터 합성음향기술이, 실제악기와 합성악기를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에 달했음을 언급한다. (Joel Chadabe, Electric Sound). 그는 1990년에 작곡된 자신의 작품 "Ritual Melodies"에서 인디언피리, 베트남식 찰현악기, 일본피리 샤쿠하치, 티베트의 종 등, 각양 각색의 악기소리를 만든 후 이를 함께 믹스하고 또 서로간에 변환시킨다. 즉 샤쿠하치 소리가 인디언 피리소리로 바뀌는 것 등이 변화를 예로 들 수 있는데, 이러한 음색변용을 통하여 A라는 악기로 시작된 멜로디가 점점 음색이 변해가면서 끝에 가서는 B 라는 악기로 끝나는 등의 특이한 음향세계를 만들어내고 이를 자신의 작품언어 안에서 소화해냈다. 


또 다른 예를 보자. 90년대에 들어 본격적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음향합성 중 physical modelling 이라는 방법이 있다. 이는 간단히 말하면, 실존하는 악기나 사물을 토대로 하여 원하는 악기 모델을 만드는 것인데, 말하자면 컴퓨터상으로 가상의 악기를 만들고 그 악기의 소리를 합성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실존하는 북의 물리적인 조건을 분석한 뒤 이를 발판으로 하여 지름의 크기가 2 미터나 되는 가상의 북을 만들어 보고 그 북을 울렸을 때 나는 소리를 합성해내는 것이 physical modelling에 의하면 가능한 것이다. 악기를 칠 때 있어서도 가죽채, 금속으로 된 채 등 여러 가지의 상황을 설정하여 다양한 실험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 
바이마르 태생의 작곡가 한스 투츠쿠 (Hans Tutschku, 1966-)는 1999년에 이 physical modelling을 사용하여 "Eiskia" 라는 8채널테이프 작품을 작곡했다. 그는 작품해설에서 자신의 작곡의도와 작업과정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Eiskia 란 희랍어로 모델 (모형)을 일컫는다. 여기서 둥근 금속판 (탐탐이나 공과 같은 금속판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과 현(弦)의 악기 성격을 분석했다. 우선 금속판이 공명될 때의 배음구조를, 현소리를 분석하여 얻어진 음향 스펙트럼에 맞춘다. 즉 악기는 금속판으로 만들어 졌지만 소리의 성격은 현악기의 그것을 갖는 악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는 이와 반대되는 악기, 즉 금속판의 배음성격을 갖는 현악기도 만든다. 이렇게 하여 하나의 새로운 모델(=악기), 즉 "혼합" 내지 "잡종"모델이 태어난다. 이 모델들은, 한 모델에서 다른 모델로의 연속적인 전이가 가능하다. 다시 말하자면 두 개의 다른 근음을 같는 금속판이 있을 경우, 한 악기에서 다른 악기에로의 글리싼도가 가능한 것이다. 가상에서의 금속판은 그 크기를 계속적으로 바꾸어 갈 수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가상의 악기는 여러 가지 방법에 의하여 울리게 할 수 있다. 가장 간단한 방법은 가상의 망치나 플렉트럼을 만들고, 이를 사용하여 악기를 치거나 뜯어서 (弦인 경우) 소리를 나게 하는 방법이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악기를 울리게 할 때 "움직임"을 중요한 요소로 이용하는 것이다. 악기의 울림을 얻는 위치를 변화시키던지 아니면 듣는 이의 위치를 바꾼다던지 하면서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변화 시킬 수가 있다. 예를 들자면 현악기를 연주할 경우 sul tasto 나 sul ponticello 등으로 음색에 변화를 주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렇게 포지션을 변화시키면서 다양한 소리를 얻는 과정을 아주 빠른 속도로 진행시키면, 결과적으로는 매우 흥미로운 음향변용현상을 얻게된다. 
이 작품 중 한 부분을 보자. 여기서는 두 개의 금속판 "혼합악기"가 울리는 동안 10개의 가상 마이크가 악기의 표면위에서 악기소리를 녹음한다. 이를 녹음하는 마이크는 미리 짜여진 패턴에 따라 아주 빠른 속도로 움직이면서 여러 형태의 다양한 음향현상을 포착하고, 이는 즉 우리의 귀가 이 소리들을 듣는 것과 같은 역할을 한다. 전 곡을 통하여서는 주로 여덟 개의 마이크가 동시에 움직이면서 소리를 녹음하는데, 하나의 마이크가 녹음한 소리는 하나의 채널에 배치되고, 이런식으로 여덟 개의 채널에 여덟 개의 마이크 소리가 각각 놓이게 되고 이것이 전체적으로 믹스된다. 여기서는 또 이 여덟 개의 마이크가 포착한 음향에 의해 공간감이 형성되는데, 전체 믹스를 통하여 청취자는 이 공간의 중앙지점에서 작품을 감상하게 되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 본 하비와 투츠쿠의 작품들은, 과학기술의 발전에 따라 아이디어를 얻어낸 작품의 하나의 좋은 예이다. 음악에 있어서 테이프라는 미디어는, 아쿠스마틱 음악이라는 장르이외에도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의해 실현이 가능해진 음악 아이디어나 또는 라이브, 즉 실제 연주로서는 실현하기 불가능한 복합적인 음악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오늘날까지 그 영역을 굳혀오고 있다. 

 

(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0년 6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