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1년 4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이며, 지금 현재의 전자음악계의 상황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전자음악의 발전,또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에게 새로이 널리 알려진 개념 중에 '인터액티브'라는 것이 있다. '인터액티브' 라는 단어의 동사는 'interact' 인데, 이의 사전적인 의미는 '상호작용하다', '서로 영향을 미치다' 등이다..
디지털 시대의 예술에 있어 interactivity, 즉 상호작용적인 성격은 여러분야에 걸쳐 상당히 큰 관심을 받으면서 부상한다..이는 아마도,미디어를 사용한 표현예술이 기계란 개체를 인간의 상대로서 받아들일 수 있고, 그러한 두 개체, 즉 인간과 기계가 서로 소통을 하게되고, 나아가 이를 더 활성화 시키고 유기적으로 결합시키는 데 있어서 적합하게 작용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고 필자는 생각한다.
상호 작용적인 요소가 억제되고 이와 반대로 중앙통제적인 성격을 띠는 연주의 경우가,예를 들자면 오케스트라 연주의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교향곡을 연주할 때, 각 악기군의 임무는 주어진 대로 자기 파트를 성실히 연주하는 것이다. 각 파트는 오케스트라 앞에서 전체를 총괄하는 사람, 즉 지휘자에 의하여 통솔되며 마지막에 가서는 이것이 하나의 음향체가 하는 연주로서 연주홀 안에 울려 퍼진다. 즉, 이 경우 연주자들은 되도록 다른 파트에 영향을 받지 않고 지휘자의 통솔에 따라야 하는, 말하자면 일방통행적인 주행을 해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교향악 연주와는 달리, 인터액티브 음악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다른 요소의 영향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서 작품이 전개되는 방향이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다시 교통질서의 예를 들자면, 교향곡의 연주가 고속도로를 타고 A도시에서 B도시로 주행하는 고속버스라고 한다면, 인터액티브음악은, 원형 교차로에서 대기하던 차량들이 상대편에서 어떤 차가 어떤 식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자신이 갈 길을 그 때 그 때 결정하게 되는 식이라고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인터액티비티에 대하여 전문가의 견해를 들어 보자.
<Composing Interactive Music>이라는 책의 저자인 미국의 작곡가 Todd Winkler는 인터액티브 음악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인터액티브 음악이란, 컴퓨터로 만들어지거나 변용되는 음악에 있어서, 인간의 행위가 가미되어 그 어떤 한 면에 영향을 미치는 작품이나 즉흥연주를 말한다. 즉, 이는 주로 연주자가 악기로 연주를 하고 컴퓨터가 음악을 만들 때, 연주 자체가 음악 또는 작품을 제어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인터액티브 음악은 지난 몇 년 동안에 멀티미디어 예술, CD/ROM, 설치예술과 퍼포먼스 예술 분야에서 꾸준히 발전해 왔다. 화면이 있는 경우에는, 컴퓨터의 마우스나 키보드를 이용하여 작곡의 진행 자체나 음악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가 있다...."
연주자의 움직임, 또는 음악적인 요소(musical parameter)의 변화가 작품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음악가들에게는 널리 알려져 있는 당연지사이다. 일반적인 경우, 작품을 작곡, 또는 연주할 경우에 있어서, 연주시 다른상황에 제한받지 않는, 절대적인 하나의 이상적 상황을 설정해 놓고 이 상황을 가정 하에 작품을 작곡하고 연주자는 작품을 해석한다. 이럴 경우, 작곡가가 제시하는 하나의 모범 답안이 있고 이것이 올바로 해석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연주자의 과제이자 의무라고 볼 수 있다. 즉, 연주시의 상황이 어떻게 달라지는가에 구애받지 않고 한결같이 모범 답안을 제시할 수 있도록 평소에 훈련하는 것 또한 어떻게 보면 좋은 연주를 위한 연습내용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만약 모범 답안이 단 하나가 아니라면 상황은 달라진다. 즉, 정황에 따라서 여러 가지 버전이 있을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작곡가가 연주자나 연주에서 비롯되는 상황에 따르는 여러 가지의 변화 상황을 참작하고, 이를 작품 진행을 위한 하나의 변수로 사용할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이러한 이유 때 문에 인터액티비티는 라이브 전자 음악 중에서도 연주자의 재량권이 큰 improvisation 장르, 즉 즉흥 연주나 또는 즉흥 연주의 성격을 띠는 음악과의 연관성이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러면 어떤 상황이 변수로 사용될 수 있는지를 알아보자. 연주에 영향을 미치는 원천으로는 여러 가지 사항을 들 수가 있다. 우선 가장 손쉬운 예로는, 음악적인 요소(musical parameter)의 변화, 연주시 연주자의 움직임을 예로 들 수 있다.
연주자의 움직임은 연주자가 사용하는 악기의 특성이나 그 악기를 연주할 때 사용되는 연주 주법에 의하여 좌우되기도 한다.
우선 음악적인 요소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고, 이를 어떻게 인터액티브하게 사용할 수 있는지를 보자. 한 소리의 음악 요소는 보통 그 소리의 길이, 높낮이 등 일단 기본적인 사항들로서 구성된다. 인터액티브음악에서는 이들 중의 한 요소를 변수요소로서 사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악기를 연주할 경우, 악기가 연주하는 프레이즈에서 다양한 장단을 가진 음들이 있을텐데, 여기서 연주 주법 중 하나인 articulation 을 만일 변수로 이용한다고 해보자. 즉, 다양한 articulation에 따른 여러 가지 종류의 길고 짧은 소리에 컴퓨터가 즉각적으로 반응하도록 할 수 있다면 어떨까. 다양한 articulation이란, 주로 스타카토, 레가토 등 우리에게 낯익은 종류의 프레이즈이며, 전통적인 주법의 음악적인 상용구에 해당한다. 연주자가 연주한 소리는 마이크를 통해 컴퓨터에 입력되고 컴퓨터는 이 소리의 음향적 성격을 그 자리에서 분석한다. 이러한 분석에 의하여 작곡자/즉흥연주자는 컴퓨터에 처리시킬 데이터를 입력할 수 있다. 이렇게 입력된 데이터는 소프트웨어를 통하여 다음 처리과정으로 넘어간다. 작곡가가 작품에서 의도하는 바에 따라서 어떤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는냐가 결정되겠지만, 이 경우는 아마도 pitch rider와 같은 분석적 기술로서 '실시간 음향 분석 및 조작'('real-time processing') 을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pitch rider' 란, 이 단어의 의미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입력되는 소리를 따라서 그 소리의 음높이, 길이, 강세 등 여러 가지 요소를 분석할 수 있는 장비이다. 예를 들자면, 지금 연주되는 이 소리에서 피치는 440Hz(즉 피아노 건반의 중간 A음), 길이는 200 ms (밀리세컨드 : ms 는 1000분의 1초임으로 200ms는 0.2 초로서 스타카토의 한 음에 해당될 것이다), 강세는 amplitude dB 로서 분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이러한 분석을 위한 소리의 입력에는 보통 마이크가 사용되는데, 이럴 경우 마이크가 감지하는 음향신호가 유일한 신호임으로 고성능의 마이크를 사용하며 되도록 정확하면서도 중성적인 소리를 얻는 것이 중요하다). 작곡가는 이렇게 분석되는 결과를 갖고 이를 컴퓨터와 연결시켜서 컴퓨터의 수행할 내용을 정하여서 명령 한다. 예를 들면, 스타카토가 짧아질수록 전자음향의 소리가 높아지고 길어진다든지 또는 악기의 소리가 여려질수록 전자 음향의 다이내믹이 강해진다든지, 아니면 스타카토가 특정 횟수를 연속하여 반복하면, 컴퓨터는 A라는 소리 (sample)를 연주한다 등등 작곡자/즉흥연주자가 무궁무진하게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적용시킬 수 있다.
이번에는 연주자의 움직임을 컴퓨터로 하여금 인지시켜서 이를 바탕으로 인터액티비티를 사용하는 경우의 예를 보자. 여러가지 예를 들자면 끝이 없겠지만, 필자의 기억에 남는 예를 하나 들고자 한다. 필자는 1994년의 ICMC(International Computer Music Conference)에 참가한 적이 있다. 해마다 열리는 ICMC는 여러 가지의 전자음악작품을 모아서 연주하는 음악회부문외에도 Paper Session, 즉 논문발표부문이 있는데, 세계 각국에서 전자음악분야의 연구원들이 모여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발표하는 심포지움을 여는 등, 전자음악 분야에서 열리는 가장 커다란 규모의 페스티벌 중의 하나이다. 1994년에는 덴마크의 도시 오르후스(Aahrus)에서 개최되었고, 필자는 이 기간 중에 열린 여러 음악회를 관람하고 Paper Session에도 참석하여 강연을 들었 던 일이 있었다. 여기서 감상한 작품 들 중 가장 인상에 남은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와 전자음악을 위한 작품이었다. 이 작품을 위하 여 작곡가는 샤쿠하치 주자의 몸놀림을 유심히 관찰, 연구하였고, 결과적으로 샤쿠하치를 연주할 때 머리를 강하게 움직이는 것이 보통이며, 이러한 주자의 머리 흔듬과 샤쿠하치의 여러 가지 주법이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음을 알게 된다. 작곡가는 연주시 주자의 머리 흔듬을 컴퓨터가 인지할 수 있도록, 주자가 머리에 쓰고 연주할 수 있는 특수센서를 만든다. 이 센서를 통하여 샤쿠하치주자의 움직임은 컴퓨터에 감지가 가능하게 된다. 이렇게 주자의 움직임이 자연스레 악기 주법과 관련이 되는 경우, 이악기 연주에 따른 자연스러운 움직임 내지 몸놀림을 음악적인 요소로 인식시킬 수 가 있다.
이는 컴퓨터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 즉 컴퓨터의 제어 때문에 연주 중 행동에 제약을 받을 것 같은 선입견에서 우리를 벗어나게도 함과 동시에 나아가 이를 하나의 새로운 작곡 요소로 받아들이게도 한다. 연주자는 이로써 '내가 A란 움직임을 하면 컴퓨터에서 B란 요소가 강해진다' 하는 것을 알 수 있고, 연주 중에 자기스스로 이를 조정할 수 있다. 이렇게 인터액티비티에 의하여 연주자가 전자음향이나 컴퓨터의 역할을 스스로 파악하면서 연주할 수가 있게 됨으로써 결국은 작품에 대한 연주자의 참여도가 높아진다. 또 이는 테이프와 악기를 위한 대부분의 경우에 발생되는 기계와 연주자 간의 부자연스러운 문제점을 극복해준다.
이러한 인터액티브한 음악을 위하여 여러 가지의 센서나 미디악기들이 개발되고 있다. 우선, 기존의 전통적인 악기에 센서를 부착시켜서 악기의 음향적인 변화나 미디 신호를 컴퓨터에 전달하여 변수로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미디 바이올린이나 미디 첼로 등은, 보통 현악기의 브리지에 시판 중인 센서를 부착시킴으로써 미디 신호의 왕래가 가능하도록 비교적 손쉽게 만들 수가 있다. 그 외에도 종래의 악기를 대폭 개량하여 본디의 악기 음색은 거의 없애버린 대신, 미디 신호만을 취급할 수 있도록 바꾸어 버린 악기들이 있다. 이들은 미디 바이올린, 미디 기타 등 악기의 공명 부분을 과감히 없애 버린 악기들로서 악기의 디자인 또한 특이한 경우가 많다.
위의 피치 라이더를 사용한 경우처럼, 악기 본래의 음향을 살려서 컴퓨터와의 의사소통을 도모하는 경우와, 미디 신호만을 주고받을 수 있는 미디 악기를 사용할 경우의 두 가지 방법 사이에는 근본적으로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는 기존하는 악기의 보통 연주주법을 컴퓨터와 매치시킬 수 있다는 장점을 갖는다. 즉, 악기 소리의 변용과 인터액티비티를 접목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단점으로는 마이크의 성능이나 제반 여건에 따라 음향 자체가 변할 수가 있고, 이로 인하여 항상 같은 결과를 얻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와 다른 경우는 후자의 경우로서, 위에서 언급한 미디 악기를 사용할 경우이다. 일반적으로 미디 악기들은 악기자체가 갖는 소리가 아주 빈약하거나 아예 없는 경우도 있는데, 이때 악기는 독자적인 음원을 갖는 경우와는 달리 컴퓨터와 연주자를 연결시켜 주는 매개체적 역할, 즉 인터액티비티를 담당하는 것이 주된 과제요 임무라고 볼 수가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미디 악기를 연주할 경우에 연주자는 연주에 접근하는 방법을 종래의 방법과는 과감하게 바꿔서 연주에 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인터액티비티를 사용하는 경우는 주로 이를 제어하는 소프트웨어의 프로그램이라든지 전자 장비의 작동 방법이 복잡하기 때문에, 무대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면서 사실상 음악적으로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유추하기는 전문가들에게 조차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기술상의 복합성과 연주상의 난해함 때문에 일반적으로 전자음악은 같은 현대 음악 장르 중에서도 청중에게 감상하기 어려운 분야로 인식되어 있고, 따라서 무대에서의 음악적, 예술적 설득력이 그리 뛰어나다고 볼 수가 없다. 이러한 문제점은 전자음악인 사이에서도 주지된 문제로서, 토론회 등에서 흔히 등장하는 단골 테마 중의 하나이다.
다시 미디 악기의 얘기로 돌아가자. 미디 악기 중에는 종래의 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퍼포먼스를 위하여 특수하게 연구, 개발된 악기들도 있다. 언뜻 보기에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악기라는 범주를 벗어나 기계에 가까운 장비들이라고 보면 된다. 암스테르담의 STEIM Studio는 퍼포먼스를 위하여 여러 가지의 전자악기를 개발하고 있다. 즉, 이 암스테르담의 Michael Waisvisz (1949-2008) 가 개발한 미디 손(MIDI Hands)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요상한 '철제 장갑' 처럼 보이는 MIDI Hands에는 손등과 손바닥에 여러개의 버턴이 달려 있어서 다양한 미디 작동을 가능케 한다. 이 MIDI Hands는 무용 또는 모션을 병행하는 총체 예술 분야와 함께 폭넓게 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비슷한 장르로는 섬세한 손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는 Laetitia Sonami (1957- )의 센서 장갑, 또 근육의 움직임을 센서가 파악하고 이를 미디를 통하여 컴퓨터와 연결시키는 biomuse, 지휘봉과 같이 사용되는 Max Mathews (1926-2011) 의 Radio Baton 등등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의 신체적인 움직임으로써 컴퓨터를 컨트롤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른 예로는 연주행위를 분석한 뒤 이를 시각적 요소와 결부시키는 방법도 있다. 즉, 실지 연주 상황에서 영사기 모니터등을 이용하여 비디오나 텍스트를 확대하여 무대에 비출 수가 있는데 사실상 디지털 예술 분야에서는 멀티미디어와 인터액티비티가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발전하고 있다. 시각예술의 대표적인 미디어로는 비디오 아트가 있다. 20세 기 중반에 들어서 시작된 이 예술 분야는 최근 들어 컴퓨터의 기술이 급진적으로 발달하면서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비디오와 음악이 연관되는 분야는 폭넓고 다양한데, 이중에서 어떤 사항이 인터액티브 음악과 접합이 될까. 주로 비디오의 시그널이 미디로 바뀌어지고, 이것이 전자음악과 연결되는 것이 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서 화면 내에서 일 어나는 사물의 움직임, 즉 물체의 속도감, 움직이는 장소의 이동 (물론 화면 안에서에 국한된다) 등의 모션을 미디를 통해 데이터로서 번역하여 이를 음악적으로 사용하도록 할 수 있는 것이 한 예이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일어난 컴퓨터의 급속한 발전은 고성능의 컴퓨터를 종전보다 훨씬 손쉽게 사용할 여건을 만들어 준다. 위에 언급한 오디오, 비디오 프로세싱은 이러한 컴퓨터의 발전에 뒷받침을 받고, 예술가들이 예전에 비하여 몇 갑절이나 손 쉬운 방법으로 복잡하고도 어려운 기술의 디지털 예술 을 형상화시키는 것을 가능케 해오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여 러 가지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 주고 있고, 이것들은 세계 곳 곳에서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
(월간 음악춘추 2001 /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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