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1년 6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이며, 지금 현재의 전자음악계의 상황과는 많이 다를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필자는 전자음악의 역사, 이론과 실제 작품 등 전자음악의 여러 분야를 총괄적으로 알아보았다. 이번호에서는 전자음악분야에서 전반적으로 대두되는 이슈에 대하여 항목별로 간단히 살펴보고자 한다.
1. 전자음악의 표기법
전자음악작업에 있어서 항상 제기되는 문제 중의 하나가 전자음악작품의 표기법 문제이다. 이는 전통적인 악보 표기법만을 사용하여서는 표기되지 않는 요소들을 전자음악이 갖고있기때문이다. 전자음악분야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런점에 대해 공감하고 좋은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나 이에 대한 통일적이고 보편적인 해결책은 실제적으로 마련되기가 어렵다. 이는 전자음악작품 뿐만 아니라 현대음악어법으로 작곡된 작품들이 전반적으로 갖는 특징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분야의 음악어법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고, 또한 청각에 의지하는 비중이 큰점 등, 음악적 내용이 광범위해지는데, 여기에 보편적으로 통용되는 규칙을 찾아내어서 하나의 공통된 표기법으로 통일시키기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볼 수가 있다.
표기법에 대하여 더 살펴 보자. 종래의 고전음악 기보법으로 표기할 수 있는 요소들을 우리가 생각해보면, 일차적으로는 음표를 통하여 나타낼 수 있는 요소, 즉 음의 높이나 길이와 같은 요소들이다. 여기에 템포표시가 있고, 또 다이내믹의 표시, 즉 피아노나 포르테 등으로 일컬어지는 강약의 표시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작품해석에 필요한 지시용어를 말을 사용하여 - 주로 이태리어- 기호가 아닌 지시사항으로 표기함으로써 이 음표가 어떤 식으로 해석이 되어야 되는지를 구체적으로 표기한다. 전자음악의 기보에 있어서 어려움은 우선 전자음악의 성격 자체가 이러한 기본적인 요소를 악기의 경우와 동일한 방법으로 표기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흔히 전자음향에서 사용되는 소리의 음높이는, 주파수를 나타내는 헤르츠(Hz)로서는 정확하게 나타낼 수 있어도, 전통적인 기보법인 온음계내지 12음으로는 정확하게 나타내기가 어렵다. 또한 리듬을 표기할 때에 있어서도 리듬의 성격이 뚜렷하게 구분되어지지 않거나 아니면 너무 복합적인 성격을 갖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이 또한 종래의 방법으로는 기보되기가 어렵다.
이에 더하여, 종래의 표기법으로는 아예 표기할 수가 없는 요소 (또는 개념)도 있다. 예를 들어 전자음악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공간감 - 예를 들어 panning- 과 같은 요소가 이에 해당된다. 어떤 음향이 4 채널을 사이를 넘나드는 움직임을 갖는 음향 변용을 하고 있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이것이 작품안에서 매우 중요한 구조적 성격으로 사용될 경우 이것이 악보에 표시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또는 나아가 실제 음악회에서 이 작품을 연주할 경우, 연주자가 위와 같은 공간적 움직임을 믹서콘솔에서 직접 라이브로 연주해야 되는 경우를 대비하여 악보에 기보를 할 필요성이 생긴다. 이럴 경우, 작곡가가 원하는 의도에 따라 전자음향의 공간적인 움직임을 악보에 정확하게 표기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를 위해서 작곡가는 특별한 기호를 고안해 내기도 하고, 나아가 이것이 하나의 기보법으로써 성립될 수 있는 논리를 부여하는 등, 일종의 시스템을 개발해내야 한다.
지금 현재 이를 위하여 보편적으로는 그래픽을 사용하여 기보를 하고 있다. 즉, 음표 하나하나를 기보한다기보다는, 작곡가의 요구에 맞추어, 음악적인 흐름에 따라 그 양상을 구도화해서 그림으로써 그려내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통하면 공간적인 움직임에 대한 대략의 음악적 윤곽은 전달될 수가 있다. 또 여러 가지의 그래픽을 다양한 방법으로 사용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작곡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을 작곡가의 음악적의도에 상당히 가깝게 표기할 수가 있다.
이러한 그래픽 기보법에 따라 기보된 작품의 대표적인 예로서는 리게티의 테이프작품 「아티큘레이션」을 들 수가 있다 (이 유명한 기보악보는 리게티 본인에 의하여 만들어 진것은 아니다). 이는 원, 점, 선 등의 그래픽을 이용하여 음악적인 흐름을 대략 그림으로서 나타내고 있다. 이 경우와 같이, 테이프 곡의 악보는 주로 작품이 완성된 이후에 청취자를 위하여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즉, 한 작품을 감상할 경우에 있어서 참고자료로서 사용될 수 있는 악보이며, 이들은 주로 작품이 다 만들어진 이후에 그의 음향적인 결과를 악보로서 재구성한 경우이다.
이러한 악보를 흔히 감상용 악보, 즉 listening score 라고 일컫는다. 이와 같은 감상용 악보가 갖는 장점은 작품의 음향을 시각화하여 어느정도 구체적으로 작품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준다는 점이며, 반면 이런 악보의 단점은 악보만 갖고서는 작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는 알아낼 수가 없다는 점이다.
다른 표기법으로는, 주로 라이브 일렉트로닉 작품에서 사용되는 방법으로써, 연주로 이행하여야 하는 바를 지시사항으로서 표기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자면, “이 부분에서는 feedback 이 이러저러한 식으로 사용되어 xx마디까지 지속되어야 한다"는 식의 표기이다. 즉, 이는 어떤 일들이 이루어져야 되는지를 기보하는 "to do" 기보법이다. (이는 필자의 개인적 표현으로, 전문용어는 아니다).
이러한 기보법에 의한 예를 들자면, 기타의 chord 기보법이나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 사용되었던 악기 류트의 타블라투어 기보법 등을 예로 들 수 있는데, 말하자면 이 방법으로는 연주자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쓰여 있지만, 이 기보법에 의하면, 결과적으로는 이것이 어떤 식으로 들릴 것인지에 관하여서는 표기되어 있지 않다. (전자 음악작품의 경우, 흔히 이러한 표기법에 병행되어 그래픽으로 간단하게 음향 결과에 대하여도 표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은 그리 정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이러한 "to do"의 지시사항은, 전자음악의 경우 자칫 잘못하면, 전자 기계에 관한 기술적 지시사항으로서의 역할로서만 끝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전자음악의 표기법이 언뜻 보아 그리 발달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혹자는 이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본다. 전자 음악이 갖는 음악 언어뿐만 아니라, 아이디어 자체 또한 악보를 통해서 형상화되기 어려울 만큼 매우 추상적인 구상에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음악을 종래의 방법에 의하여 분석하는 것 또한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또 다른 이들은, 그 이유를 전자음악에 종사하는 작곡가들의 작곡방식에서 찾는다. 즉, 특히 테이프 음악 작곡가들의 경우, 작곡을 할 때 있어서 주로 종이 한 장 정도에 요약한 간단한 작품 스케치를 옆에 두고 작업을 하면서, 현장에서 작업 과정을 통하여 작품 아이디어를 계속 발전시켜 나가면서 곧바로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이다. 이럴 경우 작품을 기보하는 과정 자체가 불필요해지고 이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기보과정이 생략된다.
즉, 다시 말하자면, 전자음향을 사용하여 작곡에 임할 경 우. 실지로 작곡가의 직관에 의하여 작업하는 경우가 많고 이러한 직관에 의한 작곡법은 주로 청각, 또는 청각적 상상력에 의한 비중을 크게 할애하게 된다. 이는 종래의 작곡방식에 의하여 기보를 하고, 이로써 자신의 음악을 표현해가는 작곡가들의 접근방법과는 현저하게 차이가 있는 음악적 접근 방식이다.
2. 음악적 직관력
필자는 개인적으로, 음악적 직관력을 매우 중요하게 본다. 어릴 때부터 악기를 다루어와서 음악적인 직관력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 있는 있을 경우, 감각에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직관력이라는 능력이 음악을 하는데 있어서 하나의 중요한 기본 바탕이 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음악적 직관력이 전자음악에서만 발휘될 수가 있고, 기악음악에 있어서는 배제되어 있다고는 물론 추호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날 현실적으로 볼 때, 음악교육현장에서는 이러한 음악적 직관력이나 청각을 바탕으로 한 음악적 사고력이 많은 경우에 경시되고 간과되는 반면, 이론에 지나치게 치중되거나, 악기 기술상의 테마에만 초점이 맞추어진 형태의 음악교육이 중시되고 있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음악의 본질에 관한 문제점으로서, 근본적으로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흔히 음악적 직관력을 단련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즉흥연주와 같이 소리의 실험을 통하며 기보란 단계를 거의 거치지 않고 이루어지는 음악행위가 해당될 것이다. 이들은 시행착오를 동반해가면서, 하나의 소리 형상을 손으로 연주하고, 귀로서 인지하며, 나아가 이를 가슴으로 느끼고, 머리로서 이해하게 하는 복합적인 과정을 단련시킬 수 있는 하나의 좋은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직관적 능력을 발전시키면서 그와 함께 병행하여 이론적 지식을 습득하면, 여러 가지 음악 법칙이나 음악 역사, 음악 분석등에서 배운내용이 하나의 지식에서 머무는 것을 넘어서 살아 있는 지식으로서 그 의미를 얻게 되며, 또 이는 한 음악가가 연주나 작곡 활동을 하는 데 있어서 아주 값지고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음악적 직관력이나 청각적 상상력에 대하여 강조하는 것은, 필자 자신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전자음악 작곡을 시작한 것이, 자신에게 내재해 있는 음악적 능력을 긍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돌파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커리큘럼이 정해주거나, 다른 작곡가의 방식을 모방하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작곡방식을 스스로 찾아내기 시작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 각 교육기관에서 작곡을 가르칠 경우, 전자음악을 정규과정에 넣는 것은, 아카데믹한 울타리 안에서 자칫 소홀히 다루기 개개인의 직관력에 관한 내용을 비교적 쉽게 보강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자음악에 관한 지식을 습득하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3. 전자음악이 다른음악 어법에 끼친 영향
현대 음악의 역사에 있어서, 전자음악이 기악음악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전후의 젊은 작곡가들은 실험정신에 입각하여, 전자매체의 사용을 환영하였고 이에 따른 여러가지의 음향실험을 행하였다. 리게티와 같이 짧은 시기에만 전자음악 작품을 만든 작곡가로부터, 슈톡하우젠이나 노노와 같이 작곡 어법 자체가 전자음향과 악기를 함께 사용함으로써 새로운 음악어법을 만든 작곡가들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곡가들이 전 자음악의 영향을 크게 받아가며 스스로의 작품 언어를 만들어 갔다.
예를 들어 작곡가 루이지 노노 (Luigi Nono, 1924~ 1990)의 경우를 보자. 그는 이탈리아 태생의 작곡가로서 일찍이 전자음악의 중요성을 깨닫고 이를 자신의 음악어법으로 정립시키기 위해 긴 세월 동안 여러 가지로 경험을 쌓고 실험을 거친 작곡가 중의 하나이다. 그는 독일 프라이부르크에 있는 하인리히 슈트로벨 재단의 전자음악 스튜디오에서 작업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특히 70년대와 80년대에 걸쳐 당시에는 여러 가지로 힘들었던 라이브 일렉트로닉스 작품, 전자음악이 포함된 오페라 등, 전자음악의 선구자 역할을 한 작곡가 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말년 작품에는 전자음악작품보다는 전자음악없이 기악으로만 작곡된 작품들을 남겼다. 그의 말기의 기악 작품들은 극대화로 절제된 소리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들은, 음색, 소리의 공간적인 사용 등을 통하여 작곡가의 극단적인 내면적 세계를 소리로서 형상화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후기 기악작품들은, 젊은 시절에 그가 경험한 전자음악 실험을 토대로 하여서만 가능했던 어법이라고 볼 수 있다.
4. 새로운 장르
90년대 말에 등장하는 새로운 전자음악의 장르로는, 시대의 추세에 자연스럽게 발맞추어 가는 것으로, 음악에 있어서의 인터넷 사용을 들 수 있다. 네트워크를 통하여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세계의 많은 사람들과 음악으로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는 매력은 음악 분야에서도 마찬가지로 작용된다고 볼 수 있다. 즉, 네트워크를 사용한 기계문명의 발달을 휴머니즘적인 측면에서 받아들이고자 하는 것과 이를 커뮤니케니션으로 사용하겠다는 의지들이 최근 10여 년 동안의 예술 현장에서 보인다.
다시 말하자면 이런 테크놀러지의 발전과 함께 일어나는 예술행위나 예술작품을 종전보다 폭넓은 사람들과 함께 교류하고자 하는 경향이 높다. 즉 다른 현대음악 분야와 비교하여 볼 때, 전자음악의 분야에서는 Sound Installation이나 Internet Art, 또는 Multimedia Art 등, 음악전문가 이외의 보통사람들도 사용하는 도구를 통하여 창작 활동을 함으로써,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가 가고 어필될 수 있는 예술 작품을 보이려 하고 있다. 이는 예술가들이 개방적이 되고 사회 일원으로서의 부분을 담당하고자 하는 생각에서 일어나는 일들인데, 현대 예술이 오랜동안 청중으로부터 괴리되어온 현 상태에서는 반가운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항상 빨리 변화하고 발달해가는 기술의 발전에, 이를 도구로 하는 예술행위와 미학이 어떤 식으로 부합되어 발전될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에게 아직은 미지수이며 동시에 무한한 가능성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기술의 발전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예술 장르는 우리에게 무한한 호기심을 일으킨다.
지난 연재를 통하여 필자는 가능한한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면에서 구체적인 작품의 예를 통하여 전자음악에 대하여 살펴 봤다. 전 장르를 걸쳐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90년대까지의 대략적인 흐름과 전반적인 추세를 훑어 봄으로써 전자음악의 전반적인 이해를 돕고 특성을 살펴 보고자 하였다. 또 필자는 주로 한 분야에 있는 작품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이를 살펴 봄으로써 실질적으로 현장에서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가를 독자 들에게 소개하고자 했다.
여기서 살펴 본 내용들은 주로 소개하는 목적으로 다루어졌기 때문에 필자는 가능한한 중립적인 위치를 갖고자 노력했다. 이 글이 독자들의 전자음악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조금이 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마친다.
(월간 음악춘추 2001 /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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