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음악의 이해

전자음악의 이해 11 -실험정신에 대하여

이정혜 2026. 6. 21. 21:50

최근 들어 우리는 실험예술', 또는 '실험음악'이라는 단어를 도처에서 접하게 된다. 실험예술'이란 단어에서 우리는 백남준의 비디오 예술이나 존 케이지의 실험음악 등 예술 역사상에서 새로운 분야에 도전한 예술가들을 떠올리게 된다. 

 

'실험예술'이란 단어는 사실상 복합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가장 간단하고 함축된 의미에서 본다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즉, 기존의 예술양식이나 표현내용을 계승하는 입장에서 창작에 임한다기보다는, 그 표현이나 내용의 선택에 있어 이전에 통용되지 않은 새로운 언어를 개발함으로써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일단은 간단하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슈톡하우젠 을 비롯한 많은 유럽 전후 작곡가들의 작품경향은, 그들이 실험정신을 발휘하고 있었지만, 기법에 있어서, 즉 작품의 구성, 리듬과 화성의 사용방법에 있어서 사실상 음악사의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에 반하여, 존 케이지를 위시한 미국의 실험 작곡가들은 전통을 탈피하는데서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음악적으로 독자적인 세계를 갖기 위해 이들은 여러 가지의 다양한 실험을 거듭하였다. 이러한 실험을 위해서 전자음향의 사용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모체로서 많은 작곡가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이러한 경향은 오늘날에도 세계 각처에서 엿볼 수 있다. 존 케이지 이후의 많은 미국 작곡가들 중, 데이빗 튜더 (David Tudor 1926-1996), 폴린 올리베로스 (Pauline Oliveros 19320-2016), 로버트 애슐리(Robert Ashley 1930-2014)를 위시한 많은 작곡가들은 실험을 필요로 하고 실험을 통해서만 가능한 여러 가지 음악적 가능성을 개발해가면서 작품활동을 했다. 데이빗 튜더야말로 스스로 만들어낸 기계들을 사용하여 전자음향을 실험하는 '발명가' 적 기량을 발휘한 작곡가로 손꼽힌다. 당시 미국에서는, 유럽에서처럼 실험예술이 국가나 재정이 튼튼한 큰 기관 및 단체에 속한 스튜디오의 주도하에서 이루어진 경우보다는 개개인의 음악적 관심에 의하여 이루어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값비싼 기재를 구입하고 조수들을 고용하기보다는 작곡가 스스로가 골방에서 자신의 기구, 즉, 악기를 손수 만들어 개발하는, 가내 수공업과 같은 개인 단위의 실험을 통하여 예술적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경우 악기를-여기서는 전자기기- 기존의 완성품으로 간주하기보다는, 음악의 변화와 함께 변천이 가능한 하나의 물체로 인식하게 되며, 따라서 작품의 내용이나 구상에 맞추어 악기가 변화될 수 있는 가능성은 얼마든지 많았다. 즉, 모범적이고 표준이 되는 지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작곡가 각자가 나름대로의 아이디어에 맞게 자신의 기준을 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작품과 악기, 또는 작곡과 해석이라는 두 가지 독립적이었던 행위가 여느 때보다도 더 상호 밀접한 관계를 맺고 교류하게 된다.. 

 

서양 음악의 역사를 훑어보면, 하나의 음악사조가 바뀔 때, 전통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의 하나로서 이러한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는 결국 역동적인 흐름이 되었다. 후기 바로크시대에 사람들이 '바로크' 라는 테두리 안의 음악에 식상하여 갈란트한 새로운 언어를 실험한다. 갈란트 양식은 독일이에서의 'Empfindsamkeit' 라는 단어로 그 의미를 축약할 수 있다. 이를 우리말로 번역하자면, 섬세한 감수성과 애수에 어린 듯한 감정을 말한다. 이러한 새로운 사조는 바로크식의 화려하고 장엄한 언어와는 상반되며, 그런 점에서 기존에 악기의 사용에 있어서도, 기존에 통용되던 악기를 그대로 이어받을 수가 없었다. 하프시코드와 같이 분명하고 단일한 음색을 가지며 음량의 조절폭이 좁은 악기는 그대로 사용되기 힘들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음악 관계자들이 개발하기 시작한 것이 오늘날 피아노의 전신인 포르테피아노다. 즉 하프시코드가 사라지고 포르테피아노가 등장한 뒤, 이 악기에 맞는 레퍼토리가 개발되고 그것이 정착이 되기까지에는 많은 음악가들과 장인들이 오랜 세월을 거치며 현장에서 쏟은 실험과 노고가 숨어 있는 것이다. 작곡을 하는 경향, 작품의 형식, 즉 하나의 음악언어가 형성되는 데는 악기의 발전이 자연스레 연관을 갖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 다시 20세기 중반으로 돌아오자. 당시의 상황, '전통'이라는 무거운 간판을 미련없이 떨쳐버린다든지 또는 이를 의도적으로 탈피하려는 상황에서는 지금까지 허락되지 않던 여러가지 일들이 가능해지게 된다. 바꾸어 말하면, 이에 따라 자연스레 종래의 표현한계를 넘는 자유가 주어진다. 다시 말하자면 기존 가치관에서부터의 탈피는 무궁무진한 새로운 가능성을 약속하는 원동력이 된다. 위에서 언급한대로 이러한 상황에서의 전자음향의 동원이란 테이프 음악이냐 라이브냐 하는 형식을 막론하고 하나의 길잡이로서,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원천이자 표현영역을 확대시키는 방법으로서 많은 작곡가들에서 환영받았다고 볼 수 있다. 

 

구체음악의 기수 피에르 셰퍼의 경우를 보자. 원로가 된 이후에 있었던 한 인터뷰에서 그는 자신이 구체음악이란 분야에 매료되게 된 경위를 위와 같은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다. 즉 2차 세계대 전 이후, 유럽의 많은 작곡가들은 조성의 언어에서 벗어나고 기능 화성에서 탈피하려고 시도했다. 이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음악언어는 12음 기법을 위시한 음렬주의 언어였다. 음렬주의 언어의 사용을 원치 않았던 작곡가들에게 있어서는 다른 언어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그리 넓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피에르 쉐퍼는 '구체음악'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함으로써 자신이 원하는 음악언어를 연구, 개발하고 그에 따라 자신의 독자적인 음악세계를 창조할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호에서 우리가 살펴본 미국의 작곡가 앨빈 루시에도 투철하게 실험정신에 입각하여 연구에 임했는데, 이에 대한 첫 시도가 'Music for Solo Performer' 라고 밝히고 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지난 호에서 자세히 살펴보았기에 설명을 생략한다). 

 

일반적으로 당시 미국의 현대음악계는 스트라빈스키, 바르톡, 베베른 등 20세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유럽 작곡가들의 작품경향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따라서 자국의 작곡가들, 즉 미국 국내의 작곡가들에게는 거의 관심을 갖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문화적 사대주의에 빠진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하자면 찰스 아이브즈 (Charles Ives)와 같은, 지금은 그 예술적 가치를 널리 인정받은 작곡가들마져도, 당시에는 전혀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도외시되고 있었다. 

 

앨빈 루시에는 젊은 시절에 장학금을 받아 로마에서 일 년간 체류할 기회를 얻는다. 이 기간 동안 자신의 창작활동에 전념하는 것 외에도 여러 음악가들과 만나 음악적 교류를 갖고 베니스, 다름슈타트 등 유럽 각지의 여러 음악제를 다니면서 당시에 일단 새로운 물결에 접하게 된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는 유럽의 음악제에서 다른 미국 작곡가들을 만나 각자의 창조적 세계에 정진할 기회를 얻게 된다. 일년여의 유럽 체류를 마친 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가 대학강단에서 교편을 잡는다. 그는 Music for Solo Performer 를 착안하게 된 경위를 이렇게 밝힌다. 

 

"나는 그때까지도. 자신이 아직도 뭔가 유럽 음악을 모방하는 데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Music for Solo Performer 를 통하여 이러한 상황에서 벗어나 내 자신의 독자적인 세계를 추구해보려 했습니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그는 명실상부한 '실험예술'의 작곡가로서 연구와 작곡에 임한다. 그의 세계는 '집중적인 청취력', 상상력이 동원된 귀를 청중으로 하여금 요한다. 특히 그의 작품은 빈번히 소리의 파동이 갖는 성격을 고찰하고 이를 이용하는데서 기인한다. 이러한 경우 때때로 소리 자체, 즉 높낮이나 장단보다는 소리가 갖는 다른 속성들, 그것의 움직임이나 공간감의 변화를 듣고 그리고 그것을 느낄 수 있어야 작곡가의 본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청중이 이러한 변화를 듣는데 익숙치 않을 경우에는 자신의 음악을 듣고,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느끼거나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한다고 루시에는 얘기한다. 이럴 경우, 이 작품이 음악회장이 아닌 열린 공간에서 연주될 경우, 즉 설치예술이라는 형식을 빌어 청중을 만나게 되면, 상황은 한결 수월해진다. 즉 객석에 묶여 정해진시간 동안만 한 자리에 머물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대로 공간을 왔다갔다하면서 천천히 여유 있게 상황을 지켜봄으로, 청중이나 관중으로서 작곡가가 설치해 놓은 상황을 체험하고 그 체험 안에서 작곡가의 메시지를 발견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에서 루시에의 작품 경향은, 작곡가가 작품을 완성하여 청중에게 들려준다는식의, 기존의 작곡과 감상이라는 고전적인 틀에서 벗어나 다른 관점에서 받아들여져야 된다. 그의 음악적 아이디어는 작곡과 설치음악의 사이를 오간다고 볼 수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아이디어에 따라서는 설치음악이라는 형식을 빌어야만 올바로 실현되는 작품이 있다는 점에서, 자연스레 음악회장을 떠나 열린 공간을 찾게 된다. 

이렇듯 아이디어의 변화는 이를 해석하는 방법과 형태에 있어서도 새로운 변화를 요한다. 이런 취지에서 여러 가지의 새로운 예술장르가 개발되며, 반대로 형식의 개발이 새로운 예술 아이디어를 제공하는 원천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상호협조적인 관계를 통하여, 새로운 예술사조가 개발, 발전된다는 점에서 예술사는 사실상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축적이 되어간다고도 볼 수 있다. ■ 

 

(본 글은 「월간 음악춘추」 2000년 12월호에 연재되었던 글입니다.)